욥기 6장 1절-30절
황주성 목사
1. 설교 내용
욥은 난 너무 아프다라고 말하는데 엘리바스는 너는 틀렸다라고 말하고 있다.
욥은 고통의 문제로 시름하고 있는데 엘리바스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예시) 십일조를 하면 정답이고 하지 않으면 오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는 순간 엘리바스가 된다.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정답과 오답을 미리 판단해 놓았기 때문이다. 정답과 오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의 문제들, 수많은 영역들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한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비추어볼 수 있다.
소망이 없는 세상을 향해 너희는 틀렸다라고 말한다. 욥과 같이 아파하는 세상을 향해 너희는 틀렸고, 그것은 죄이고 지옥간다고 얘기한다. 교회가 세상의 고통에 무책임하고 무관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맞는 말이지만 고통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말이다.
바리새인이 바로 정답을 주려고 하는 공동체였다.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데 헌신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오답으로 규정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
우리는 정답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변칙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교회는 정답과 오답을 결정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이미 정답과 오답을 결정해 놓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은 예전에 이런 일을 해서 안되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이래서 안되고, 이런 신학적 사고는 이래서 틀렸고, 이것은 분명 죄이므로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지옥갈 것이고, 이런 식으로 정답과 오답을 정해서 사람들의 고통의 신음을 미리 들어보기도 전에, 어떤 대화를 시도해 보기도 전에 내 마음 속에서 이미 차단이 되고 우리의 사고가 굳어지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정답과 오답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정답으로 여겨졌던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하시고, 오답으로 여겨졌던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섬기셨다.
2. 느낀 점
옳고 그름, 정답과 오답을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데, 나는 내가 하나님을 제끼고 오히려 사람들의 재판관이 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재판하시는 유일한 재판관이시지만 그분의 긍휼의 마음으로 오답인 나를 범죄자의 그룹에서 제하여 주셨다.
세상의 일들을 내가 재판할 것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고통을 동감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다.
새벽 설교 들으시고 정리한 내용이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주성 목사님 설교의 핵심을 잘 정리하시고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새롭게 깨닫고 또 적용하신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정답과 오답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겠다고 새롭게 도전을 받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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