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25, 2023

불편한 편의점 - 삼각김밥의 용도

 

1. 요약

사장인 염여사와 편의점 동업을 하며 일하고 있는 오선숙은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 때문에 인생이 고달프다. 그녀의 인생을 고달프게 한 첫 번째 남자는 바로 그녀의 남편.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고 가게를 하다 가출해 버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지만 선숙의 집요한 잔소리에 다시 가출한 후 생사가 묘연해졌다. 그러한 남편을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다. 다음 두 번째 남자는 바로 그녀의 아들.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갑자기 때려치우더니 주식투자로 돈을 날리고 또 영화를 한다고 빚까지 내고 하더니 그게 무산된 후 우울증에 빠져 병원 신세까지 졌다. 선숙은 아들에게 사정하여 외무고시를 준비하게 했지만 그는 여전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미 두 남자들로 인해 불행해질대로 불행해진 그녀의 인생이건만 노숙자였던 사내가 편의점 야간 알바로 왔다는 걸 안 순간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 또다시 회오리 바람이 불 것만 같아 불안하다. 그런데 이 독고라는 남자는, 조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게 한다. 사장 언니가 가불해 준 돈으로 외모가 아주 깔끔해졌고 편의점 업무 또한 놀라울 정도록 빠르게 적응해 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아주 훌륭하게 처리해내고 있다. 이제 이 남자는 선숙이 그녀의 인생에서 이해하지 못할 세 번째 남자로 불쑥 들어와 있게 되었고, 그렇지만 이전 두 남자와는 결이 다른 모습으로 더욱 더 선숙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던 중 편의점에서 짜몽이라는 비행 청소년의 삼각김밥 절도를 현장에서 붙잡게 되고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던 중 소년이 던진 삼각김밥에 선숙은 이마를 얻어맞게 된다. 그러나 그 소년이 도망치려는 찰나 독고씨가 나타나 소년을 붙잡게 되고 선숙에게 용서를 빌도록 한 후 소년을 대신해 삼각김밥을 독고씨가 계산하고 나가서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이 과정에서 선숙은 안정감과 용서, 그리고 약간의 흥분에 의한 생동감 등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고 완고하기만 했던 그녀 자신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음을 느끼게 된다.

이 일 이후 그녀는 독고씨를 대할 때 이전의 불편함보다는 안도감을 더 느끼게 되고, 독고씨의 일하는 모습에서 선숙은 마음이 점점 열리게 된다.

그러나 선숙은 그녀의 아들과는 여전히 녹록치 않다. 외무고시를 준비한답시고 매일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아들을 선숙은 봐줄 수가 없다.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선숙은 급기야 아들의 방을 두드려 아들과 한바탕 하게 된다. 얘기를 좀 하자는 그녀를 매몰차게 뿌리친 아들이 방문을 꽝 닫아버리고 다시 게임에 몰두해버리자 선숙은 허탈함과 분노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다음날 아침 편의점에 출근한 그녀는 독고씨의 인사에 그만 마음이 무너지고 터져나오는 눈물과 함께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봇물처럼 독고씨에게 털어놓는다. 그런 그녀의 하소연을 묵묵이 모두 들어준 독고씨는 자기가 선숙의 얘기를 들어준 것처럼 선숙도 아들의 얘기를 먼저 들어주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 전에 삼각김밥과 편지를 먼저 주라고 하면서. 선숙은 그동안 아들과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아들 얘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자신의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강요하기만 했던 자신을 깨닫고 삼각김밥 아래에 둘 편지를 통해 진정한 아들과의 소통을 기대하게 된다.


2. 느낀 점

이번 챕터의 등장인물들의 갈등 상황 속에서 삼각김밥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이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왜 굳이 삼각김밥일까? 썰어진 긴 원통형 김밥도 편의점에서 파는데...

첫번째 삼각김밥의 등장은 짜몽과 선숙의 갈등 속에서 등장하며 무기로 쓰였고 용서의 도구로 쓰였고 화해의 감정을 만드는 역할로 쓰였다. 이렇게 세 가지의 역할로 쓰였고 이 사건의 연루된 등장인물 또한 세 사람이다.

두번째 삼각김밥의 등장은 선숙과 아들의 갈등 속에 재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등장인물은 선숙, 아들, 그리고 독고 이렇게 세 사람이다. 그리고 삼각김밥도 이 갈등 속에서 게임의 친구로, 아들과의 갈등의 표현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소통의 도구로 이렇게 세가지 역할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가는 편의점의 다른 것보다 이 삼각김밥을 독특하게 소재화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은 계속되는 새로운 갈등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 같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오히려 멀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등을 다루는 것이 용이하지 않고 서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사건 사고가 계속적으로 많아지는 것이 인터넷의 영향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요즘 외치는 것이 소통! 소통 좀 합시다! 인 것 같다. 정치권이나 교육계, 사회 전반적으로 소통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오선숙 여사처럼 소통한답시고 아들에게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소통하는 것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챕터는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인지를 단편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은 자기주장으로 상대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들어주는 것인가? 이야기 속에서는 잘 들어주는 매개체로 삼각김밥이 등장한다. 삼각김밥은 짜몽이 훔칠만큼 먹기 좋아했던 것이고 선숙의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더욱 더 재미있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즉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은 그 순간 나의 모든 관심과 집중은 상대편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상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정말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상대방이 되어 그것을 찾아줄 수 있기를 진정으로 간구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서 그것을 반박하려고 면밀하게 듣는 것이 절대 아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라면 또한 이렇게 소통한다면 어떠한 갈등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더욱 더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3. 나의 적용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있었던 갈등의 예를 생각해 보자.

갈등의 예를 생각했다면 어떻게 그 갈등을 해결했는지 기억해 보자.

지금 그 갈등을 다시 겪는다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예전의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좀 더 건강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가?


4. 실천 방법


성경적 관점과 크리스천의 관점으로 해석한 내용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래 정진부 목사님의 블로그에서 좀 더 깊은 내용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정진부 목사님 post '불편한 편의점 - 삼각김밥의 용도'





Sunday, October 8, 2023

불편한 편의점 -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1. 요약

시현은 여러개의 알바를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편의점 업무를 아주 훌륭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 그녀에게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40대 중반의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이다. 이 인간은 참으로 고약하게 시현을 이리저리 맥을 못추게 하며 괴롭힌다. 아마도 시현같은 힘없고 빽없어 보이는 편의점 알바를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삶의 즐거움을 얻는 것 같다. 

그런 시현에게 하나의 짐이 또 더해졌으니 바로 그 노숙자 독고씨가 편의점 직원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 왔던 시현은 편의점 알바가 그녀에겐 아주 딱 맞는 돈벌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알바를 지속하다보니 이젠 이 직업이 자신에게 오히려 맞는 천직으로 여겨지기까지 하던 터에 독고씨의 교육령이 사장님 지시로 떨어지게 되어 이 편의점 직업을 지키기 위한 소중한 사명감으로 임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교육의 현실은 독고씨의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말투와 느려터진 행동, 아직도 찌들어 있는 노숙자 냄새 등으로 인해 녹록하지가 않다. 거기다가 사장님의 동업가인 오여사의 독고씨에 대한 시비와 불평까지 받아내야 하므로 갈 길이 그리 평탄치 않게 보인다.

그러던 중 그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가 나타나 교육중인 독고씨를 시험하게 되는 위기의 상황을 맞게 된다. 일부러 어려운 담배 주문부터 비닐봉지로 시비를 거는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를 독고씨는 담담하게 받아 넘길 뿐만 아니라 새 비닐봉지 대신 독고씨의 꼬질한 에코백을 물건 주머니로 제공하는 등 오히려 통쾌한 반전을 선사한다. 결국 사내 기싸움에 완전히 꼬리를 내린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는 그 이후로는 편의점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고, 독고씨는 독고씨대로 점점 편의점 직원으로 나무랄 데 없이 모든 일을 잘 소화하게 된다.

그런데 독고씨는 시현에게 가르치는 재주가 있다고 칭찬하며 유튜브 영상을 만들 것을 제안하게 되고 그렇게 시작한 유튜브로 시현은 결국 다른 편의점에서 점장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2. 느낀 점

'사장이 직원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직원도 손님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역지사지의 한자성어가 생각난다. 글에서는 수직상하 관계만 언급했지만 어느 인간관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한자성어다. 인간의 죄성은 자신보다 좀 더 못한 사람을 대할 때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한국 모토로라에서 일할 때 중국 텐진에 공장이 있어서 두어번 출장을 갔었다. 처음 생산라인에 들어갔을 때 좀 뻘쭘하고 어리벙벙했으나 곧 내 업무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그 곳에는 나보다 먼저 출장을 와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거기 중국공장에 출장으로 잔뼈가 굵은 동료들도 있었다. 그런데 곧 나는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동료들이 한결같이 생산라인의 중국직원과 일하고 대화하면서 마음에 안들때나 농담으로 한국어로 상대를 무시하는 말과 욕을 한다는 점이었다. 소통은 영어나 중국어를 쓰면서 상대를 좀 까고 싶을 때 한국어로 그렇게 상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상대직원은 그게 무슨뜻인지 모르니 그냥 혼잣말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참 충격을 받았다. 그 전에 알고 지내던 직장 동료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직장 상사로부터 억눌림 당하던 그 스트레스를 상대 중국직원들에게 풀었던 것일까? 중국이 대부분은 못사는 사람이라서 인간적으로 깔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중국이 공산국가라 한국의 적대국으로 생각해서일까? 나는 그 직원들에게 상스러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좀 지나 어느 시점부터 나도 그 중국직원들을 좀 하대하는 듯이 행동하게 되었다. 직장 동료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교정해 주지는 못할망정 나도 똑같이 그 행동에 동조를 하게 된 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큰 잘못을 한 것이었지만 결국 인간은 그 죄성으로 인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 죄의 본성이 나를 뚫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가끔 접하는 끔찍한 뉴스들 - 연쇄 살인마, 공공장소에서 총으로 난사 등 - 을 접할 때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거나 말하기 이전에 나도 그 범죄자들의 특수한 상황에 처했다면 나도 충분히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맘 속에 되새기게 된다. 인간의 첫 살인은 창세 몇 대 후손이나 몇 세기 후가 아닌 바로 아담의 첫째 아들이었으니까.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전 15:34a)

성경 말씀에 깨어 있으라고 한 말씀이 어디 이 한 곳 뿐이겠는가. 죄가 나를 삼키려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지금 나는 말씀에 의지하여 깨어 있기를 기도한다.


3. 나의 적용

항상 깨어있기 위하여 어떤 방법이 있는지 구체적인 예시를 든다면? 




4. 실천방법

죄를 짓는 순간 나는 화로 사로잡혀 있거나 극도로 불안한 상태일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그 순간에 감정을 추스리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내가 죄라고 느끼는 순간 바로 예수님께 기도를 드리도록 노력하고 그것을 성령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 기도의 행위와 노력으로 그 순간 죄는 잠시 중단될 것이고 사탄은 당황하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때 말씀과 기도의 융단폭격을 쏟아부어 죄를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 --- 하~ 가능한가?


성경적 관점과 크리스천의 관점으로 해석한 내용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래 정진부 목사님의 블로그에서 좀 더 깊은 내용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정진부 목사님 post '불편한 편의점 -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